지난 7월1일 밤 역주행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에서 보고된 급발진 의심 사고는 무려 766건에 달한다. 하지만 그중 급발진이라고 인정된 사례는 0건이다. 왜 급발진을 명확히 밝히지 못할까. 급발진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급발진은 차량이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가속하는 현상으로 기계적 또는 전자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기계적 결함은 부품이 기계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다.
과거 구형 차량들의 경우 가속 페달과 연결된 케이블이 노후화되면 가속 페달이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엔진 출력이 원치 않게 증가하는 것이 대표적인 급발진 발생의 원인이었다.
최근 대두되는 급발진 사고의 원인은 과거의 기계적 결함이 아닌 전자적 결함이 주로 언급된다. 전자적 결함은 엔진, 가속 페달, 브레이크 등 차량의 다양한 부품을 제어하는 전자 제어 장치(ECU) 문제로 급발진이 일어나는 경우다.
급발진 주장 사고를 감정하기 위한 여러 검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순간의 데이터를 기록하는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이다. 비행기 사고 조사에서도 결정적 증거로 사용되는 EDR은 사고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이전 5초, 이후 0.3초의 데이터(자동차 속도, 엔진 회전수, 가속 페달 밟음량,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 등 총 67가지)를 기록한다.
EDR 데이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가속 페달 밟음량과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다. 가속 페달 밟음량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얼마나 밟았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다. 99%일 경우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는 의미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들은 자신이 가속 페달이 아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EDR 기록에서는 가속 페달 밟음량이 0%지만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는 'on'으로 기록돼야 한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분석한 수많은 사고 중에서 차량이 완전히 파손돼 분석 자체가 불가능했던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기록이 나타난 사례는 없었다. 지난 7월 9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시청역 역주행 사고도 최종적으로 급발진이 아닌 고령 운전자의 오인 조작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과수는 사건이 발생한 지 약 2주일 만에 사고 당시 가속하는 동안 가속 페달이 밟힌 상태와 그동안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EDR 기록과 브레이크 후미등 등 여러 데이터를 반영한 감정 결과를 발표했지만 그럼에도 운전자는 급발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도 사고의 원인이 급발진이 아니라는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EDR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복잡한 ECU에 문제가 발생하면 EDR 기록 또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EDR 데이터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자동차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어서 그 내부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급발진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으나 그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하겠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완벽히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은 마음속에 불안감을 낳는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급발진 사고가 아니라는 과학적 증거를 우리는 왜 믿지 못할까. 그저 대중사이의 막연한 공포감이 우리의 관심을 더 자극하고, 스릴을 느끼게 해줘서일까.